Page 22 - G123 - 2021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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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완포리에 있습니다. 완포리는 금강하구로 인해 물
                                                   이 풍부하여 벼농사가 잘되는 곳입니다. 가구 수는 대략
                                                   60호이며, 저희 완포 교회당은 마을 중앙을 지나는 길옆
                                                   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1983년 여름, 와초교회와 화촌교회의 성
                                                   도들이 완포리에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도하던 중 집사
                                                   님 한 분이 교회당 터를 희사하여 그곳에 임시천막을 세
                                                   우고 예배드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완포교회 연혁’에

                                                  서 발췌). 1989년에 지금의 교회당을 건립하고 38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목회자가 완포교회를 섬겼으며 저는 9대 담임 목회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대부분 농촌 교회처럼 우리 교회 역시 출석하는 성도들도 70~80대의 어르신이 많습니다. 과
                  거에는 농촌 교회도 주일학교와 성가대, 남녀전도회와 구역 활동들이 활발했습니다. 하지만 이
                  미 20년 전부터 농촌교회에서는 노령화가 시작되어 지금은 은퇴하신 직분자들의 헌신과 섬김
                  으로 운영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실 선교지에서 한인 목회를 하다가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저를 다른 지역으로 인도하시기

                  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어디로 인도하실지 잘 몰랐습니다. 저를 아시아의 어느 나
                  라의 선교지 혹은 목회지로 보내실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국으로 귀국하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기 서천에서 농촌 목회를 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지에서의 사역 경험이 이곳 농촌에서 사역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주
                  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선교지와 가장 비슷하게 닮아 있는 곳이 바로 여기 농촌이기 때문입니
                  다. 먼저 농촌이라는 지역은 제가 경험하지 못한 타 문화권과 같습니다. 이제 다음 달이면 여기
                  온 지 만 1년이 됩니다. 제가 C국에 처음 선교사로 파송 받았을 때 1년 동안 선교지의 언어와 문
                  화를 배우고 몸으로 익혔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1년 동안 우리 가족은 충남 서천 사람들의 언
                  어와 문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나는 성도들과 이웃들은 모두가 제가 이제까

                  지 만나 보지 못했던 노년 세대입니다. 물론 이전에 교회 안에서 노인분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르신들로만 이루어진 세대의 구성원들을 위해 목회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저는 대부분 도시교회와 선교지에서의 사역을 경험했던 목회자입니다. 한마디로 농촌 목회는
                  처음입니다. 물론 청년 시절 매년 여름마다 여름성경학교나 수련회를 통해 농촌 교회를 단기 사
                  역으로 섬겼던 경험은 있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 시골에는 성도들과 어린이들이 많았고, 오히려
                  목회자와 교사가 부족한 형편이었기에 지금 제가 맞닥뜨린 농촌 목회와는 전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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