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빌리온G123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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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관해 겪은 웃지 못할 일을 이야기하자면, 내가 집 근처 새벽기도를 나간 적
이 있었다. 전통 있는 교단의 교회였다. 뒷자리에는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앉기 불
편한 이들을 배려하기 위한 전형적인 긴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그 소속 교
인이 아니었고, 잠시 조용히 기도하러 온 것이었기에 의자 한 모퉁이에 앉아 한참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눈을 떠보
니 나이 지긋하신(권사님?) 여 성도님이 “죄송하지만 여기는 우리 사모님 자리예
요”라고 하지 않는가?
사모님 자리... 뜨악! 그래서 그 자리를 양보 아닌 양보를 하고 조용히 일어나 다
른 자리로 옮겼다. 그날 그 사모님께서 기도하러 오시지 않은 것 같았는데, 기도하
고 있는 나를 굳이 자리 이동시키는 위력이며, 그 교회 사모님께서 기도하러 오셨
더라도 내가 먼저 앉아 있었다면 그 자리 주인께서는 오히려 내게 양보하셨을 것
같은데...
목사의 딸로 자라, 어릴 때는 교회가 ‘아빠 교회’였기에 내가 대장 아닌 대장 같
았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부터는 목사 딸이라는 것을 굳이 티 내지 않았던 것 같
다. 그리고 고등학교 다닐 때 음악부에 속했는데 그리도 목사님 딸들이 많았다. 우
연이었을까? 친구, 선후배 목사님 딸들이 반 이상은 된 듯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피아노 전공을 하게 되었고 반주는 모조리 내가 도맡아 하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수요일, 주일 오전 대예배, 저녁예배, 성가대 반주, 부활절, 크리스마스, 부서별 찬
양대회 등등. 엄마가 나를 피아노를 시킨 이유가 반주자들의 예기치 않은 공석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있었기도
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선교 순회 선박인 ‘둘로스 선교선’을 보고 선교사의 꿈을
키우며 음악선교사가 되기를 소원했었다. 이렇게 나는 자연스레 기독교 문화 가정
에서 자라면서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교회를 애증 하는 자가 되었다.
| 25_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