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G.123 VOL.1 2020.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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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온 한 식구의 행복과 감사
박리디아/김다니엘 선교사(C국)
하 나님께서 저를 부르심은 이랬습니다. 이크를 힘차게 밟으셨고, 우리는 다시 선교지
바닷가 근처에서 농사짓는 시골 마을
로 향했습니다. 필리핀만 생각하고 현지답사
이 제 고향입니다. 1980년 초 가난했던 우 를 마친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은 방향전환을
리 마을, 농촌교회의 젊은 목사님 부부는 동 요구하셨습니다. C국이었습니다!
네 청소년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며 세계를 품 C국, 어디로 가요? 소수민족을 떠오르게
고 기도하며 선교비전을 품고 살도록 인도하 하셨습니다. 섬기던 교회를 사임하고 2007년
셨습니다. 어느 수요일 밤 이은무 선교사님 5월, 다섯 식구가 GM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의 선교보고 영상을 보면서 인도네시아 사람 낯선 땅에서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들이 사는 위생 상태가 엉망인 강물 위의 집 엄마로, 아내로, 언어 배우는 학생으로, 선교
에서 생활하면서도 예배하는 모습에 가슴이 사로, 사모로….
뜨거워졌습니다. 중1, 여름 수련회 때 말씀과 함께 동역하는 사역에서 나의 자리는 돕는
찬양 그리고 통성기도의 열기 속에서 성령님 자였습니다. 지도자들 재교육 세미나에서 식
은 내게 선교사로 헌신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 준비는 언제나 나의 몫이었습니다. 이후
신학을 공부한 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같 교회와 아동센터에서 동역자들과 함께 일하
은 비전을 품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필리핀에 게 되었고, 주일 설교와 주일학교 성경공부를
서 선교의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뜨거운 열 인도하면서 선교사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확
정을 가지고 나아간 그곳에서 하나님은 하나 고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마
님의 법을 인정하며 살도록 혹독한 훈련을 시 르다의 자리보다 마리아의 자리에 앉고 싶었
키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한국에 귀국했는데 습니다. 그래서 한 자매와 1:1 성경공부를 하
그 시간이 길어졌고 작은 시골교회에서 13년 게 되었고 주일학교 교사 훈련을 시켰습니다.
동안 목회자 사모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새 초등학교 교사인 자매는 매주 자신의 재량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여기가 좋사오니’ 간을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말씀을 나누었고
라고 안주하려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브레 아이들에게 천국 소망을 선포했습니다. 학생
G.123_ 20 | 21_2020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