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동로인 19년 1-3월호
P. 12
학도회는 일반적으로 한 달에 한 주간씩 진행하였다. 그 내용은 첫째, 설교의 이유와 중요한 원칙 등
이다. 그 후 훈련생들은 이를 연습하고, 돌아가면서 설교하도록 하였다. 참석자의 조건은 그리스도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중생과 구원의 경험과 간증이 있어야 했으나 시험은 없었다. 학도반(學道
班) 외에 교회에서도 역시 정기적인 교제와 기도회 시간에 훈련하였다. 매 처소(處所)마다 매주 1회 기
도회를 하였고, 성도와 교역자들이 2시간 동안 같이 기도하였다. 한편 동역자들은 새벽기도회를 매주 1
회씩 하였는데 주요 참가자들은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었다. 또한 각 구(區)의 책임자들도 정기적인 기
도회를 하였다.
온주의 또 다른 어느 교회는 전도인들의 설교에 관련된 훈련을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책임자급의
동역자들은 먼저 성경연구반에 참가시키고, 기도회를 조직하고, 그들의 설교를 듣게 한 후에 보충하고,
수정하고, 설교의 레이아웃 작성하는 법을 배우고, 몇 곳에 보내어 시험설교를 하도록 하고 점진적으로
인도하도록 하였다.
둘째, 전도부문 사역을 살펴보면, 위에 언급한 두 가정교회는 전도사역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후자
는 매년 복음전도의 계획을 세우고, 어떤 처소는 분기마다 1회, 어떤 처소는 반년에 한차례 전도 집회를
하였다. 그 외에도 전도인들은 산간벽지나 섬, 시골지역 등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기본적으로 먼저
기도하고 후에 한 두 명의 성도를 내보내 전도하고, 성도들이 헌금하여 그들의 여비를 만들었다.
하남(河南)지구에서는 전도대원들이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성경공부 반을 세우고, 초신자들을 양
육하였다. 어떤 경우는 4-5km마다 성경공부 반을 개설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전담자를 파견하여 순회
하며 인도하도록 하였다. 집회의 주요내용은 성경 기본진리를 가르쳤으며, 감동이 있는 대로 가장 필요
한 내용을 설교하였으나, 특별히 정해진 방식은 없었다. 성도들을 인도하는 책임자들은 한편으로는 가
르치면서 또 한편으로는 훈련을 받았다, 그 훈련의 내용에는 성경공부, 설교와 집회 인도하는 것 등이
다. 바꾸어 말하면 전도와 훈련이 서로 결합된 것이다.
셋째, 문서사역 관련 사역을 살펴보자. 이 사역은 1970년대 초에 전개되었다. 문화대혁명 초기, 많은
성도들이 성경과 찬송가와 기타 기독교 신앙 서적들을 필사하였다. 문화대혁명 후기에 이르러서 하마
터면 몰수당하거나 소각당할 뻔하였다. 가정교회 부흥 시에는 성경과 신앙 서적들의 수요는 급증하였
다. 하남성의 어느 농촌교회에서는 수백 명이 모이는 모임에 성경은 오직 한 권뿐이고, 심지어 천 명이
넘는 모임에서도 성경이 한 권뿐인 경우도 있었다.
적지 않은 성도들은 비싼 가격을 주고서라도 성경을 구입하기를 원하여서 힘들게 성경 한 권을 구입
하였다. 농촌 지역에서 대도시인 상해나 광주까지 장거리 여행을 통해 성경을 구하기도 하였다. 하문
(廈門)의 한 성도는 밤낮으로 성경 필사하는 사역을 발기하였고, 한편으로는 여러 지역의 성도들에게
보내기도 하였으나 이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으로 그리 큰 보탬이 되지 못하였다.
대략 1974년경 가정교회는 성경 필사와 성경과 신앙서적을 등사(油印)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문화대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