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동로인 19년 1-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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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로이스 선교사 : 한국에 들어와서 남편이 본부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저 또한 사무실에 자주 나와야

           하는 부담이 있어서 몇 번 갔었는데 막상 사무실에 가도 마땅히 할 일이나 자리가 없어서 불편하더라고
           요. 그래서 발길을 멈추다 보니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진영 선교사 : 중간에 건의사항이 있습니다. 본부 상근직에 대해서는 부부가 함께 사역하는 것으로 정
           관이나 관례로 정해놓는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대표 : OMF나 규모 있는 다른 단체에서 이미 실행하고 있는 내용으로 남편이 본부의 대표나 다른
           직책을 맡게 되면 부인 선교사에게도 적절한 직분과 직능을 가지고 함께 사역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류본부장 :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저는 한국으로 나오신 선교사님들한테 특별히 묻고 싶습니다. 선교
           지에서는 선교사였는데, 선교지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사역지와 사역들이 없어지면서 선
           교사라는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지? 선교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으신지요?



           김로이스 선교사 : 저는 사역지에 있을 때도 남편이 교수사역을 했기 때문에 사모님이라고 불려서인지
           선교사라는 호칭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모님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제가 선교사가
           아닌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호칭에 대한 구분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한국에 나와 보니 호칭에 대해

           민감해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한국에 들어와서 가정과 선교사로서의 사역에 혼란이 있었
           지만, 사역지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학생들 돌보는 사역을 하면서, 교회에 선교사로서 참석해야 할 모
           임들에 나가면서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전공인 그림을 다시 배우면서 다음
           사역을 준비하는 시간도 보내고 있습니다.



           류본부장 : 감사합니다. 이제 안식년을 보내고 계신 방정식 선교사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방정식 선교사 : 저는 6개월 안식년을 보내면서 느낀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후배 선

           교사님들은 한국에 임대아파트를 알아봐서 자녀들이 머물 곳을 마련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이
           들이 선교지를 떠나 한국에 있으면 고아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고생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것을 독
           립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돌아가신 장모님이 제 아내한테 “너희는 사역자라고 선교지에 있
           으면서 아이들을 팽개쳐 두느냐”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 아내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없으셨다고 하지만 부모님이 볼 때는 손주들이 오갈 데가 없는 것이 마음이 아프셨던 거지요. 처음에는

           섭섭했지만, 부모로서 우리가 애들한테 최선을 다했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아들 같은 경우에
           는 입대할 때 제대할 때 못 가봤거든요. 제대하는 날도 혼자 가방 끌고 빌리온 게스트룸에 와서 자고 가
           고 했죠. 이번에 선교사들에게 게스트룸을 3개월 이상 빌려주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임대아파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안식년 선교사님들이 자녀가 대학, 독립할 때 머무를 곳을 미리 준비하면 좋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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